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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 파기환송, 조국 재판 앞두고 직권남용 문턱 높였다 - 중앙일보 - 중앙일보

블랙리스트 파기환송, 조국 재판 앞두고 직권남용 문턱 높였다 - 중앙일보 - 중앙일보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모습. [뉴스1]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모습. [뉴스1]

적폐청산 수사에서 시작돼 현 정부까지도 겨냥하고 있는 검찰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직권남용) 수사에 대해 대법원이 새로운 기준을 세웠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30일 '문체부 블랙리스트' 사건을 법리오해 및 심리미진으로 일부 파기환송하며 직권남용 유죄 성립의 문턱을 높였다. 2018년 7월 블랙리스트 사건이 전원합의체에 회부된 지 1년 6개월만이다. 
 

대법원 '문화계 블랙리스트' 파기환송

직권남용 문턱 높였다  

대법원은 박근혜 정부 당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 등이 진보 성향의 예술단체에 지원금을 배제한 행위는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봤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이뤄진 청와대와 문체부, 예술단체간의 업무협의를 직권남용으로 판단한 원심과 국정농단 특별검사의 공소사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문체부 블랙리스트 1·2·3심 판단. 그래픽=신재민 기자

문체부 블랙리스트 1·2·3심 판단. 그래픽=신재민 기자

대법원은 파기환송한 일부 혐의에 대해 "김기춘 등 피고인들이 직권을 남용했지만 그 결과로 상대방이 '의무에 없는 일'을 하지는 않은 경우가 있었다"고 밝혔다. 직권남용죄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다른 사람이 의무에 없는 일을 하게 될 때 성립한다. 
 
대법원은 공무원이 '의무에 없는 일'을 했을 때 그 의무가 구체적 법령에 근거해야 직권남용죄가 성립한다는 기준을 제시했다. '의무에 없는 일'의 기준을 '구체적 법령'으로 좁힌 것이다. 또한 행정기관 내에서 상하기관과 감독기관, 피감독기관 사이의 지시와 업무 협의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직권남용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직권남용죄가 공직 사회의 복지부동을 초래했다는 우려를 반영한 듯, 정부 부처간 지시 과정에서 직권남용죄의 적용을 엄격히 해석한 것이다. 
 

조국과 양승태에 미칠 영향  

법조계에선 이날 대법원의 판결이 직권남용죄로 기소된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 우병우 전 민정수석 등 전·현직 정부 인사 재판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 보고 있다. 
 
2019년 12월 26일 서울동부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한 조국 교수의 모습. [연합뉴스]

2019년 12월 26일 서울동부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한 조국 교수의 모습. [연합뉴스]

유재수 감찰무마 의혹에 대해 "감찰무마가 아닌 특감반원에 대한 민정수석의 업무지시"라는 조 전 장관의 주장은 '행정부처 내 상하기관간 업무지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직권남용이 성립되기 어렵다'는 이날 대법원의 판결과 부합하는 측면이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도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이 도덕적으론 비난받을 행위라도 '구체적 법령 위반'은 없었다며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5월 '직권남용 성립 요건'이란 논문을 발표했던 이완규 변호사(법무법인 동인)는 "조 전 장관의 경우 당시 감찰 무마 과정이 다른 감찰 때와 얼마나 달랐는지,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구체적인 감찰 원칙이 무엇인지를 모두 따져봐야 한다"고 했다. 이 변호사는 다만 "직권남용의 유죄 기준이 상당히 높아졌다"고 말했다. 
 
대법원의 결정으로 향후 파기환송심에선 김기춘 전 실장(징역 4년)과 조윤선 전 수석(징역 2년),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징역 2년) 등 피고인 7명의 감형 가능성도 점쳐진다. 대법원은 김 전 실장과 조 전 수석이 청와대를 떠난 뒤에 이어진 지원금 배제 행위에도 책임이 있다는 원심판결 역시 파기환송했다. 퇴임 후에는 블랙리스트 업무에 책임을 져선 안 된다는 것이다. 
 
문체부 블랙리스트 대법원 선고 주요 쟁점. 그래픽=신재민 기자

문체부 블랙리스트 대법원 선고 주요 쟁점. 그래픽=신재민 기자

또한 이번 사건의 경우 7명의 피고인이 업무상 상하관계로 얽혀있어 김 전 실장 등의 지시를 받는 입장이었던 김소영(징역 1년 6월-집행유예 2년)·신동철(징역 1년 6월) 전 청와대 비서관의 경우 무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사직 강요는 유죄  

대법원은 다만 박 전 대통령에게 '나쁜 사람'으로 찍혔던 노태강 전 문체부 국장(문재인 정부 초대 문체부 2차관)에게 사직을 강요했던 김종덕 전 장관과 김상률 전 청와대 교문수석 및 박근혜 정부 초기 3명의 문체부 1급 공무원(최규학, 김용삼, 신용언)에게 사직을 요구했던 김기춘 전 실장과 김종덕 전 장관의 직권남용 혐의는 모두 유죄라 인정했다. 사직 강요와 관련해 이들에게 적용된 강요죄는 원심과 마찬가지로 무죄라 봤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나쁜 사람'으로 찍혀 공직에서 물러난 것으로 알려진 노태강 전 문화체육관광부 체육국장 2017년 1월 11일 오후 서울 대치동 국정농단 특검사무실에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하던 모습. [중앙포토]

박근혜 대통령에게 '나쁜 사람'으로 찍혀 공직에서 물러난 것으로 알려진 노태강 전 문화체육관광부 체육국장 2017년 1월 11일 오후 서울 대치동 국정농단 특검사무실에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하던 모습. [중앙포토]

김명수 대법원장을 포함한 대법관들은 지난 1년 6개월간 문체부 블랙리스트 사건을 두고 격렬한 토론을 벌여왔다. 이날 전원합의체 선고에서도 조희대 대법관과 박상옥 대법관이 각각 별개의견으로 무죄 취지의 주장을 펼쳤다.
 

'블랙리스트 무죄'라 주장한 대법관 

조 대법관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현 정부 인사들이 청와대 캐비닛에서 발견한 블랙리스트 관련 문건을 특검에게 제공한 행위를 비판했다. 조 대법관은 해당 문건이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라 주장하며 "이러한 청와대의 행위가 허용될 경우 정치적 보복을 위해 전임 정부에서 활동한 고위 공직자들을 처벌하는데 악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박 대법관의 경우 피고인들이 특정성향의 예술단체에 지원을 배제한 행위가 "헌법상 문화국가의 원리에 위배되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였으며, 평등의 원칙에 반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박 대법관은 "모든 문화적 활동을 기계적으로 균등하게 지원해야 할 국가의 의무나 이에 대응하는 개인의 권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3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조윤선 전 청와대 정부수석 등 7명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 상고심 판결에 입장해 착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3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조윤선 전 청와대 정부수석 등 7명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 상고심 판결에 입장해 착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이에 대해 다수의견에 선 박정화·민유숙·김선수·김상환 대법관은 "문화예술에 대한 국가의 지원은 '조건 없는 재정적 지원', '정치 지도자들이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는 지원', '경제적 지원에만 머물고 창작행위와 내용에 간섭하지 않는 지원'이어야 한다"며 블랙리스트 사건은 명백한 헌법 위반행위라 반박했다. 
 
대법원이 '문체부 블랙리스트' 사건을 직권남용 기준 제시의 판결로 선택한 건 크게 세 가지 이유다. ▶사건 내에서 벌어지는 직권남용 행위와 양태가 다양하고 ▶단순 법령 위반을 넘어 문화적 기회의 균등과 사상의 자유란 헌법적 가치를 다루고 있으며 ▶급부행정이란 국가의 역할과 상하관계로 이루어진 피고인 7명의 공범관계가 법리적으로 복잡하게 얽혀있어 따져볼 게 상당하기 때문이다. 
 
문체부 블랙리스트 1·2·3심 판단. 그래픽=신재민 기자

문체부 블랙리스트 1·2·3심 판단. 그래픽=신재민 기자

검찰의 직권남용 견제될까 

이날 대법원의 판결로 한때 사문화된 조항이었으나, 적폐청산 수사과정에서 검찰이 되살려낸 직권남용죄의 법적 기준이 마련되게 됐다. 고등법원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어디 상황에도 적용할 수 있는 직권남용죄가 살아나며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의 권력이 막강해졌다"며 "법원이 직권남용의 엄격한 기준을 제시하며 검찰에 제동을 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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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30 09:20:31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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